이달의 의료진

한결같은 어린 환자의 엄마같은 의사, 소아청소년과 서은숙 교수


한결같은 어린 환자의 엄마같은 의사,

소아청소년과 서은숙 교수


서은숙교수


이것저것 관심이 많아 ‘오지랖’소리를 듣기도 하는 의사, 다시 태어나도 소아청소년과를 선택하겠다는 의사, 매 순간 의사로서 행복감을 느끼는 의사. 어느덧 정년을 2년 남긴 서은숙 서울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를 떠올리며 붙이는 수식어다. 그녀는 어린 환자들을 돌보는 것 외에도 15년간 질병관리청 예방접종보상심의회와 피해조사반 위원으로 활동하며 국내 보건의료산업 발전에 여러 발자취를 남겼다.


서은숙 교수는 경상북도 영천에서 6남매 중 둘째로 태어나 초등학교까지는 대구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항상 밝고 쾌활했지만 지는 것만큼은 참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때 한 친구가 KBS어린이 합창단에 간다며 노래 연습을 하는 것을 보게 됐습니다. 저도 막무가내로 우겨서 지원을 했습니다. 결국 그 친구랑 제가 KBS합창단에 합격했습니다. 그만큼 욕심이 많았던 거 같아요. 고등학교 3학년 때 담임 선생님께서 샘이 많다고 붙여준 별명이 ‘서샘숙’이었어요(웃음)”
서 교수의 어린 시절 처음 꿈은 약사였다. 사촌고모들이 모두 약사였기에 그 모습이 어린 마음에 동경의 대상이었다. 중학생 시절 그 꿈이 바뀌는 계기가 생겼다. 아버지의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 당시 ‘닥터 케논’이라는 드라마가 인기가 많았거든요. 어느 날 아버지가 저에게 ‘여자 의사도 괜찮은 직업 같네’라고 하시더라구요.”검찰공무원이어서 엄격했지만 항상 인자했던 아버지의 말을 늘 하늘처럼 생각했던 서 교수에게 ‘의사’라는 새로운 꿈이 생기게 됐다.


순천향 30년, 질병관리청 15년의 인연
감염병 예방 관리 공로로 ‘옥조근정훈장’ 수훈


고등학교 시절, 전교 60등 안에 들어야 갈 수 있는 특별반에 들어 갔지만 수학실력은 다소 약했다. 그래서였는지 “의대에 가겠다”는 말에 돌아온 선생님의 답은 “네가 의대에 가면 내 손에 장을 지지겠다”였다. 하지만 한번 목표를 정하면 끝을 보는 성격이었던 서 교수는 끝내 이화여대 의과대학 입학에 성공했다.


“의대 중에 수학2 과목 대신 과학과 수학을 연계한 과목을 보는 곳은 당시 이화여대 뿐 이었거든요.” 이후 경북대 의대를 다니던 지금의 남편과 만나 결혼 후 계명대 의료원에서 레지던트와 스태프로 4년의 시간을 보냈다. 그 다음으로 인연을 맺은 곳이 바로 순천향대학병원이다. 전공과목으로 처음부터 서 교수가 원했던 것은 ‘소아청소년과’였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로 그렇게 30년이라는 세월을 순천향과 함께 했다.


“저는 어른보다는 아이들을 보는 게 좋았어요. 그리고 손에 메스를 쥐는 일도 원치 않았거든요. 그래서 저에게 가장 잘 어울리고, 가장 하고 싶었던 과가 소아청소년과였습니다. 아마 다시 태어나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을 거예요.” 아이들을 돌보며 지내던 서 교수는 활동하던 학회의 우연찮은 추천으로 질병관리청과 연을 맺었다. 예방접종 피해보상 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게 된 것이다. “병원업무와 병행하면서도 질병관리청 업무에 힘든 줄 모르고 살아온 거 같아요. 15년 시간이 흘렀지만 지금도 처음처럼 변함없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1992년 당시 예방접종은 거의 소아백신이 전부였다. 전문 역학조사관도 거의 없었다. 일부 의사들이 병역을 대신해 조사관으로 활동하는 수준이었다. 그만큼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지 않았다. “실제 역학조사가 이루어지기 보다는 뭔가 문제가 있으면 가능한 보상해주는 시스템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때론 문제가 되는 사례들도 있었어요. 하지만 이제는 전문 인력이 700명이 넘고 많은 시스템의 보완이 이루어졌습니다. 당시가 100점 만점에 10점이라면 지금은 90점 수준까지 높아졌어요. 매우 고무적인 일입니다.”


서 교수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15년간 예방접종 피해조사와 보상심의 위원으로 활동하며 시스템을 보완하고 감염병 예방과 관리에 공헌해 왔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2010년과 2011년에는 신종인플루엔자 관련 유공 등으로 대통령 표창을, 2014년에는 보건복지부장관 표창을 받았다. 그리고 지난해에는 정부로부터 예방접종 피해보상제도의 합리적 운영에 기여한 공로로 훈장을 받기에 이르렀다. 지난 12월 3일 질병관리청 주관으로 오송보건의료행정타운 국제회의실에서 열린 ‘2021 감염병관리 유공 포상 수여식’에서 ‘옥조근정훈장’을 받은 것이다. “저 혼자만의 것이 아닌, 그동안 함께 고생하신 많은 분들과 받는 훈장이라 생각합니다. 코로나19뿐 아니라 여러 감염병으로 지금도 현장에서 고생하는 많은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서은숙교수


아이들과 눈높이 맞추는 친구같은 의사


서 교수가 30년간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로서 어린 환자를 대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이들과 먼저 가까워지려 노력하는 것이었다. 권위 있는 의사보다는 때론 친구 같고, 때론 엄마 같은 의사가 되고자 했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아이들의 입장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자 노력해 왔습니다. 환자의 이야기와 마음을 알아주는 것도 치료의 일부라 생각하거든요. 가끔은 시시콜콜한 부분까지 너무 많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오지랖이 넓다’는 얘기를 듣기도 하네요(웃음).”


그동안 아이들과 함께 하면서 가장 신경을 써 온 분야는 ‘소아신경’ 분야다. 처음 전문의가 되었던 당시만 해도 ‘소아신경’은 많이 알려지지 않은 분야였다. 그래서 깊이 있게 전문적으로 연구하기가 쉽지 않은 여건이었다. 하지만 몇몇 고마운 선배들은 서 교수의 소아신경 분야 연구에 많은 힘을 보태 주었다. “5년 선배였던 당시 연세대세브란스 병원 정희정 교수님은 모든 것을 다 아우르며 여러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분야 최고 권위자이자 동년배인 김흥동 교수님 역시 기초부터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지식과 노하우를 아무런 대가없이 저에게 나눠 주셨습니다.” 이런 선배들의 도움은 지금도 서 교수가 소아신경 분야를 연구하는 밑거름이 되었으며 이 분야 전문가가 되는 토대가 되었다고 설명했다.



서은숙교수


순천향은 가족 같은 병원…후배들이 후회 없는 의사 되었으면


서 교수는 “저는 유명한 의사도 아니요, 남들보다 더 많은 논문을 쓴 의사도 아니지만, 누구보다 후회 없는 의사”라고 전했다. 자신이 처음부터 가슴에 새겨놓은 의사로서의 참된 모습을 지키려 노력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또한 지금보다 10배 이상의 환자를 보던 바쁜 시절에도 학회와 질병관리청 등의 활동을 게을리 한적 없다. “후배들 역시 먼 훗날 후회하지 않는 의사가 되었으며 하는 바람입니다. 30시간, 40시간 근무를 하고 며칠씩 당직을 서도 당직비 한 푼 받지 못하던 시절에도 많은 선배들은 시간을 쪼개어 공부하고 성심껏 환자들을 돌봐왔습니다. 지금은 그때보다 여건이 많이 나아졌잖아요? 후배들이 더 많이 공부하고 또 환자와 더 많이 대화를 통해 그 마음을 읽으려 노력하는 행복한 의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후배들에게 기회가 되서 나랏일이나 새로운 병원일이 주어진다면, 망설이지 말고 일단 먼저 해보면 그 안에서 더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 조언했다.


서 교수는 이제 정년을 2년 남짓 남기고 있다. 하지만 정년 후에도 의사로서 그동안 해온 일들 중 여전히 할 수 있는 일들은 계속할 생각이다. “사실 저는 집순이거든요(웃음). 정년 후에는 여자이자 엄마로서 평범한 삶을 살고 싶습니다. 다만 질병관리청과 같이 그동안 몸담았던 일들에 대해서는 부름만 있다면 계속 할 생각이에요.”


순천향대학병원에 대한 남다른 애정도 표현했다. “비록 제가 순천향대학교 의대 출신은 아니지만, 30년을 함께 하면서 느낀 점은 4개 병원 모두가 한 가족과 같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저희 가족들도 오랫동안 이 병원에서 진료와 치료를 받고 입원도 경험했거든요. 모든 순천향대학병원들이 원내 직원들 뿐 아니라 환자들과도 마치 가족과 같은 마음으로 서로를 대한다는 점은 다른 병원에서는 느낄 수 없는 매우 소중한 일이라 생각해요.” 서 교수는 “누군가 물어본다면 항상 최선과 정성을 다하는 병원, 환자 한명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병원, 그래서 누구한테든지 권하고 싶고, 또 자신 있게 권할 수 있는 병원이라 자부한다.”며 병원에 대한 애정을 감추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