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토론

내가 그라목손을 미워하는 이유

내가 그라목손을 미워하는 이유


새해를 맞으며 조금 색다른 도전을 해보기로 마음먹은 게 있으니 바로 농약공부다. 얼마전부터 꼭 해야지 하면서도 계속 늦춰왔지만 작년말 홍성 YMCA 간사로부터 어느 이주 여성농민의 제초제 음독상담을 요청받고 더이상 미루기가 어려워졌다.

그뒤 인터넷에서 현재 제일 문제가 되는 제초제 그라목손 및 농약전반에 대해 검색한 후 틈틈이 농약공부를 해왔다. 때로 농민회 등의 요청에 따라 관행농업을 하는 농민들을 대상으로 농약 안전사용과 유기농 교육을 병행하는 한편 보다 상세히 알고자 유기화학과 독성학 관련 책도 구해 참고로 하고 있다.

제초제의 대명사로 불리는 그라목손은 의사들이 붙인 별칭 그대로 ‘녹색의 악마’이다. 찻숟가락 반 술(약 5cc)만 음독해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다시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연간 1천 7~8백여명이 특정 농약 하나로 희생되는데도 우리 사회의 안전장치는 전혀 가동되지 않는다. 그리고 희생자 대부분이 이 농약과 친숙한 농민들이기에 더욱 안타깝다.

‘...부디 희망을 갖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난 수십년간 농약중독 환자를 진료해온 천안 순천향병원의 홍세용 박사님이 음독환자의 보호자에게 쓴 댓글중 일부이다. 아마도 그분은 의사로서 보호자에게 같은 답변을 수없이 반복했을 것이다. 선진국에서는 국가기관이 실시간으로 중독 상담센터 등을 운영하지만 그이는 개인적으로 진료중에 천금같은 시간을 쪼개 보호자에게 일일이 환자의 상태나 치료상황을 알려주고 있다. 덕분에 순천향 병원은 우리나라 최고 권위의 농약전문 병원이 됐다.

홍박사님의 홈피에 올린 8백여 건이 넘는 보호자들의 애타는 사연을 읽노라면 이 농약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절감할 수 밖에 없다. 나 역시 이미 이 약의 생산을 금지시킨 국가들처럼 그라목손이 농촌에서 사라지는 그날까지 고삐를 늦추지 않기로 했다. 이제 몇년전과는 달리 주무기관인 농촌진흥청도 제조사에 개선을 요구해 음독시 흡수속도를 낮추는 신제품이 나왔으나 정작 독성에는 변함이 없다. 업체측에서는 병원이나 구급대에 중화제를 공급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병주고 약주는 셈이다.

안전한 농산물에 대한 소비자의 갈구와 농약에 대한 거부감은 기업으로 하여금 농약을 ‘작물보호제’로 둔갑시켰으나 이는 마케팅 용어(sales talk)일뿐 본질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농약은 아무리 포장하고 미화해도 독극물일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까닭에서다. 몇년전부터 유기농의 확산으로 농약사용이 줄어 관련업계엔 비상이 걸렸다지만 소비자나 우리 농부들은 크게 환영할 일이다.

요즈음 나는 많은 이들 앞에 설 기회가 되면 불문곡직(!) 주최측의 양해를 얻어 잠시나마 <그라목손 추방>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인간이 만든 최악의 물질인 이 농약이 식물이건 농부이건 이 땅의 \'소중한 생명들을 빼앗을 수 있는 권리\'(license to kill)에 한 번도 동의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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