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의료진

마음의 중심을 잡아주는 유도와 나의 인생

마음의 중심을 잡아주는 유도와 나의 인생

정신건강의학과 우성일 교수는 환자들의 정신건강을 돌보기 이전에 자신의 마음상태를 가다듬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정신의 중심을 잡는 수련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연구, 진료에 힘을 쏟다보니 자연스럽게 스트레스가 쌓였고 우 교수는 몸을 움직이는 운동, 특히 유도에서 그 해결책을 찾았다. 우성일 교수가 전하는 ‘유도와 인생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자.


유도는 모든 스포츠가 다 그렇듯이 자기가 준비를 많이 하고, 힘과 기술이 잘 발달되어 있으면 이기는 아주 정정당당한 세계의 영역입니다. 유도를 하게 되면 시합이든 대련이든 사실 봐주는 것이라고는 있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유도의 세계에서는 비록 제가 55세라고 해도 제가 고교생이나 대학생을 넘기면 그들이 당하는 결과가 크거든요. 유도대련 시에는 쾅 넘어가면 자기도 아프고 이기려고 100% 아집을 내면, 심리적 격앙도 되고 상대를 다치게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절대로 그렇게 않습니다. 약 70%~80%의 힘을 가지고 대련을 벌이다가, 순간적으로는 90% 이상의 힘을 잠깐씩 쏟는 것이지요. 그리고 승패의 결과가 꽤 크기 때문에 이기려고 상당한 노력을 하게 되는 겁니다.

마음비움과 겸손함을 알게 하는 교훈의 운동

많은 분들이 그렇듯이 저도 운동은 여러 가지를 해 봤습니다. 대학교때는 검도부를 하며 검도 3단을 땄고, 마라톤도 8번 완주 했고, 트라이애슬론도 아주 장거리 코스는 아니지만 올림픽 코스에서 완주를 여러 번 했기 때문에 체력은 어느 정도는 자신이 있었죠. 유도는 예전에 고등학교에서 주당 1시간씩 수업한 정도의 기초에다가 44세부터 다시 본격적으로 시작했는데, 처음 2년간은 대련해서 이긴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이후 9년 동안 끊임없는 대련을 한 결과 차츰차츰 이기는 확률이 많아지게 됐습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젓가락질을 하더라도 밥을 먹을 때 젓가락질을 처음 한 사람하고 열 번 젓가락질 해본 사람하고 천 번, 2천 번 한 사람하고는 젓가락을 놀리는 쓰임새가 다르죠.

그런 식으로 제가 유도 대련을 1천5백 번에서 2천 번 가량을 하다보니까 기술과 요령이 늘게 된 것이지요. 비슷한 수준의 상대를 맞잡아보면 그에 맞는 기술이 나오게 됩니다. 하지만 아주 강자의 경우에는 예측할 수 없는 기술들이 나오기도 하고, 힘이 또 장난이 아니지요. 그러니까 항상 겸손하게 됩니다. 이길 수 있는 상대와 이길 수 없을 만큼 강한 상대가 있기 마련인 것이지요. 그러한 면에서 이 세상에서 자신의 위치를 깨닫게 되고, 유도에서의 자연 물리법칙 세계에 대해서도 깨닫게 되는 면도 있습니다.

유도에서의 승패에 대한 마음가짐에 대해서도 얘기해보고자 합니다. 유도에서 승패라는 것은 한마디로 어떤 물건을 잡으려고 할 때는 잘 잡아야 하고, 놓으려고 할 때는 손을 잘 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즉 이기기 위해서(꽉 잡으려는 마음)는 노력을 많이 해야 되지만, 동시에 또 승패가 일단 났으면 승복하고 마음을 비워야 합니다(놔버리는 마음). 결국 손을 쥐는 것과 펴는 것이 동시에 잘 이루어져야 불구가 아니듯이, 유도에서도 승패에 연연하지 않는 그런 마음가짐이 필요한 것입니다.

유도가 의사로서의 인생에서 가지는 의미

제가 전문직을 가진 의사로서, 교수로서의 인생에서 유도란 어떤 의미가 있냐고 질문에 답하고자 합니다. 제가 의사로서의 인생을 살고 있지만 의사이기 이전에 하나의 인간으로서 여러 가지 인생사를 겪기도 하고, 어떤 한계에 부딪치기도 하고, 그로 인해 스트레스도 받아가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특히 프로페셔널한 의사가 되기 위해 많은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압박감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연구라든지 진로영역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고, 수 십 년간을 제대로 된 연구를 해보고자 하는 노력 끝에 어느 정도 수준은 달성했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아직 끝난 것은 아닙니다. 아직 정년퇴임도 10년이나 남아 있고, 그 이후에도 연구와 관련된 일을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연구에 대한 집념을 가져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연구를 위해서 나머지를 다 희생해야 한다면 그건 결코 잘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일을 추구해도 자신의 원하는 다른 일도 같이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친구를 사귄다 해도 한 친구하고 내가 완전한 우정을 이루기 위해 다른 친구들과의 관계를 끊을 수 없듯이 말입니다. 한 친구하고도 깊은 우정을 맺으면서도 다른 좋은 친구들도 많으니까 그렇게 관계를 맺듯이 제가 연구에 대한 프로다운 집념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만, 그것뿐만 아니라 또 하고 싶은 것도 할 수 이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어떤 사람이건 자신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면 자신에 대한 자부심을 가질 수 없는 것은 확실합니다. 하지만 그 자부심만을 위해 모든 걸 다 희생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행복해 질 수는 없다고 봅니다. 그래서 저의 경우에는 유도를 한 것을 후회하지 않고 유도를 했다고 해서 프로페셔널 영역이 이루어지지 않았을거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하튼 독특하다고 할 수 도 있지만 원하던 것을 했고 그렇기 때문에 후회는 없습니다. 사실 연구영역에서 더 일찍 더 많이 연구업적을 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만, 유도를 함으로써 적어도 연구에 방해를 받진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결론적으로 유도는 가장 중요한 연구‧진료‧교육 등에 치중하게 될 때 발생할 수 있는 저의 정신적 불균형을 잡아주고 생명력을 보충해주는 균형추의 역할을 해왔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