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의료진

치료도 수술도 환자 중심으로, 허경열 외과 교수

치료도 수술도 환자 중심으로
외과 전문의 허경열 교수

“우리나라 인구 5천만 명 중 5백만 명이 당뇨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허경열 교수는 정상 체중 당뇨 환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현상에 주목하고 있다.

외과 수술로 당뇨 완치

그의 말에 따르면 우리나라 당뇨와 서양의 당뇨는 원인이 각각 다르다. 서양에서는 비만 때문에 당뇨가 생기는 데 비해 우리나라에서는 비만이 아닌 사람에게도 당뇨가 많이 나타난다. 우리나라 당뇨 환자가 급격하게 늘고 있는 이유를 허경열 교수는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우리나라 당뇨는 많이 먹어서 생기는 병이 아닙니다. 맛있게 먹기 위해 다들 빨리 흡수되고 혈당지수가 너무 높은 음식만 먹기 때문에 생기는 겁니다. 소장에 영양소가 들어오면 호르몬이 분비되는데 상부 소장과 하부 소장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이 각기 다릅니다. 그런데 정제된 음식은 상부에서 다 소화되므로 하부까지 영양소가 내려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상부 소장에 있는 호르몬만 분비되고 하부 소장에서는 호르몬이 분비되지 않는 겁니다. 호르몬의 밸런스가 깨지기 때문에 당뇨가 되는 것이 우리나라 당뇨 환자의 특징입니다.”

허경열 교수는 서양과는 달리 아시아권에서는 정상 체중에서 2형 당뇨병이 발생한다는 점에 착안해 2010년부터 아시아 5개국(대만, 한국, 일본, 홍콩, 인도)과 공동 연구를 진행, 2011년 3월 뉴욕에서 열린 제2차 국제 중재적 당뇨치료학회에 발표해 관심을 모았다. 연구 결과를 미국 외과학계에서 가장 유명한 학술지인 에도 제출했으며, 개인 연구 결과를 미국의 유명 논문집인 에 게재했다.

당뇨에 걸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허 교수는 “정제된 탄수화물을 섭취하지 말고, 과일은 껍질째 먹고, 나물류와 현미를 먹는 게 좋다”면서 “종합해보면 현미비빔밥이 최고”라고 한다.

당뇨 진단을 받으면 보통은 그 순간부터 약을 먹기 시작한다. 하지만 허경열 교수는 외과적 수술로 당뇨가 완치될 수 있다고 말한다. 수술방법은 간단하다. 음식물이 상부 소장을 거치지 않고 바로 하부 소장으로 내려가도록 축소위우회술을 하는 것이다. 그가 지금까지 수술한 환자가 160명 정도 되는데, 모두 예후가 좋아서 혈당도 개선되고 아직 부작용도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복강경수술 국내 도입

허 교수는 복강경수술의 대가이기도 하다. 복강경수술은 개복하지 않고 복강경이 들어갈 정도만 절개하여 그곳으로 바람을 넣어 생긴 공간에 복강경을 삽입해서 집도하는 수술법이다. 의사 입장에서는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수술이지만, 환자 입장에서는 최대한의 편의를 누릴 수 있는 수술이기도 하다. 개복수술은 수술 후 입원 기간도 길고 흉터도 크게 남지만 복강경수술은 개복을 하지 않아 흉터가 아주 작으며 회복기간도 훨씬 짧다.

허 교수는 복강경수술을 도입해 우리나라에 확산시키는 데 기여한 일등공신이다. 그는 미국 연수 시절에 이 수술법을 배웠다. 복강경수술로 인해 그의 미국 연수는 흥분의 연속이었다. “미국으로 연수 가는 의사들은 많습니다. 그런데 그 타이밍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제가 연수할 때에 미국에서 복강경 수술이 꽃을 피웠습니다. 그때 복강경수술의 경이로움을 처음 봤지요.”

우리나라에도 복강경을 이용해 담낭 절제수술을 한 적은 있지만 거기까지였다. 미국에서 돌아온 후 허경열 교수는 국내 처음으로 복강경을 이용해 공여신적출수술을 했다. 7cm만 절제해 수술하니 이식이 필요한 환자에게 신장을 공여하는 사람의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개복수술과 복강경수술의 차이는 절개를 얼마나 하느냐 하는 정도지만, 탈장수술은 절개의 정도를 넘어서 완전히 다른 수술이 된다. 허 교수는 미국 연수 때 처음 복강경 탈장수술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수술실에 들어갔는데, 집도의가 수술을 하지도 않고 다 끝났다는 겁니다. 기가 막혀서 좀 따졌지요. ‘복강경 탈장수술을 한다고 했는데 수술은 언제 하느냐’고요. 그랬더니 ‘당신이 지금까지 복강경 탈장수술을 봤는데 무슨 소리냐’고 오히려 핀잔을 주지 뭡니까. 놀라웠습니다.”

탈장을 복벽이 약해져서 장이 빠져나오는 질환이다. 그런데 절개해서 하는 기존 수술은 근육 바깥에 인공 막대를 대서 탈장을 방지하는데, 복강경수술은 근육 안쪽으로 인공 막대를 고정시킨다. 그렇게 하면 자체 압력 때문에 더 단단하게 고정된다는 것이다. 이건 마치 논두렁이 터졌을 때 물이 새는 걸 방지하기 위해 비닐로 막을 경우 논 바깥에 비닐을 대느냐, 논 안쪽에 비닐을 대느냐의 차이와 같다. “복강경 탈장수술은 수술 다음날 환자가 퇴원할 수 있을 정도로 환자에게 데미지를 주지 않는 수술입니다.”

지금까지 허 교수가 실시한 복강경수술은 모두 1,500건 정도. 오랜 경험이 말해주듯 이제는 수술하면서 카메라를 들여다보는 것이 마치 직접 두 눈으로 보는 것처럼 선명하고 확실하다.

그는 자신만의 노하우를 독점하지 않으려고 동료 의사들에게 기술을 직접 보여주고 전수했다. 지금까지 그가 실시한 시연회는 10여 차례에 이른다. 그 중 순천향대학교병원에서 한 시연회는 단 네 차례뿐이다. 나머지는 외부 의사들을 위해 연 시연회였다. 국제학회에서 허경열 교수를 불러 시연회를 열기도 했고, 홍콩에서 시연회를 한 적도 있다. 허 교수가 복강경 탈장수술 시연회를 갖는다는 것은 아직도 이 수술이 보편화 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많은 경우는 아니지만 가끔 다른 의사에게 복강경 탈장수술을 받았다가 잘못된 환자를 재수술한 적도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기술력 때문에 복강경 탈장수술을 하는 의사가 많지 않지만, 이 수술을 하는 의사가 많아질수록 탈장 환자들의 고통도 줄어들 것입니다. 다른 의사가 수술한 환자를 제가 다시 재수술하는 건 환자를 위해서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다른 의사도 훌륭하게 복강경 탈장수술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제 꿈이기도 합니다.”

환자에게 새로운 삶을 주는 의사

인터넷에 ‘허경열’이라는 이름 석 자를 검색하면 몇 페이지에 달하는 검색 결과가 뜬다. 그 중에 어느 환자가 수술 후 소감을 올려놓은 게시판을 만날 수 있다. “며칠 전부터 밥을 먹고 나면, 아니 음식을 먹고 나면 속이 엄청 불편하다. 드디어 수술해주신 선생님과 통화를 했다. 그런데 선생님은 내 증상이 일종의 스트레스라는 것이다. 진짜 인생이 슬프다.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 말야. 하지만 그런 인생이라도 살 수 있게 해준 선생님께 감사한다. 날 수술해준 선생님은 허경열 선생님이다. 힘들 때도 있지만 아마도 수술하지 않았다면 난 이런 삶을 살 수가 없었을 것이다. 고맙다.”

삶이란 원래 고단한 날의 연속이지만, 적어도 질병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 삶을 즐겁게 누릴 수 있는 힘이 있다. 하지만 질병에 시달리는 사람은 하루하루의 삶이 그대로 지난한 나날의 기록이 되고 만다. 허경열 교수에게 고마움을 표한 이 여성 역시 지난한 삶을 살았을 터이지만 수술 후 조금씩 고단한 날을 즐거움으로 바꾸어가고 있는 모양이다. 명의란 사람의 삶을 즐거움으로 만들어주는 의사가 아닐까 싶다.

전문분야 : 간담췌외과, 탈장 복강경수술, 당뇨수술
1984년 순천향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순천향대학교병원 수련의 및 외과전공의 수료
1995년 순천향대학교 대학원에서 의학박사 학위 취득,
순천향대학교 의과대학 외과 교수,
순천향대학교병원 응급의료센터 실장 역임
일본 도쿄 게이오대학 복강경외과 연수(1997).
일본 도쿄 국립암센터 근무(1997),
미국 뉴욕 Sloan-Kettering 암센터 상부위장관암 수술 연수(1997)
미국 뉴욕 Mt. Sinai Hospital Dr.Gagner로부터 고도비만 복강경수술 연수(1997),
일본 아이치 Fujita Health University Dr.Uyama로부터 조기위암의 복강경 절제 연수(2003).
대만 타이페이 엔추공 병원 고도비만 복강경수술 연수(2003)
대한의학협회 회원, 대한외과학회 학술위원회 위원, 대한탈장학회 편집위원장, 대한간담췌외과학회 회원
대한내시경복강경외과학회 학술위원회 위원, 대한위암학회 회원, 대한비만학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