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향스토리

내 머리속의 지우개


“할머니~ 좋아 보이시네요? 그간 잘 지내셨어요? 약도 잘 드시죠?”
“응~ 약 잘 먹어~...근데 넌 누구야?”

병원에서 몇 개월 치료 후 요양기관에 가신 한 할머니의 병원 방문에 반가워서 인사를 드리니 할머니께서는 저를 알아보지 못하십니다. 입원하고 계실 때 치매검사도 해드리고 약도 챙겨 드리면서 할머니 젊은시절 이야기도 다 들어줬는데~
병원에 계실 때도 가끔은 “누구야?”라며 되묻곤 하셨지만 기억을 못하시다니 섭섭함을 금할 길 없습니다. 할머니는 아무래도 ‘내 머릿속의 지우개’가 들어 있는 모양입니다.

집안에 치매환자가 있게 되면 환자들보다 가족들이 더 힘든 경우가 많은데요. 대부분의 환자, 보호자들은 기억력 저하가 노화의 과정만으로 생각하고 조기발견과 치료시기를 놓칠 때면 아쉬운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치매환자의 검사, 보호자와 환자관리에 대한 면담을 실시하고 난 후 더디지만 치료가 되고 있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으면 환자분들이 기억력 감퇴로 저를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뿌듯함을 느끼죠.

저는 이같이 신경계 질환을 가지고 있는 환자를 돌보는 신경과 전담간호사랍니다.
신경과 전담간호사는 신경계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에게 의사와 간호사 중간 역할 뿐 아니라 입원, 외래환자의 전체적 관리, 신경과 관련 각종 검사에 직접 참여 및 보조, 어지럼증의 물리치료, 예방적 교육, 약물 복약지도 등 환자들의 추적관리를 맡고 있죠. 그래서 환자분들은 병동에서 저를 봤는데 외래에도 있고 응급의료센터에 있기도 하고 검사하러 가도 있고 매월 한번은 치매무료검사를 위해 신경과 교수님과 노인복지관도 나가니 어리둥절해 하며 도대체 어디서 일하냐고 물어보는 경우가 많아요.

치매만큼 잔인한 병도 없는 것 같습니다. 겉은 멀쩡한데 기억과 성격은 전혀 다른 사람처럼 파괴되기 때문이죠. 치매 어르신들을 보면 꼭~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같아서 맘이 더 가고 잘 해 드리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영화 ‘내 머릿속의 지우개’에서 치매였던 주인공이 “나한테 잘해 주지마. 나 다 까먹을 꺼야."라고 했지만 아낌없이 사랑한 남자배우처럼 신경과 전담 간호사인 저 박희경도 치매어르신의 치료를 위해 아낌없이 드릴 겁니다.

글. 박희경 신경과 전담간호사